단단한 일상을 위하여

일상기록(日常記錄)/모든 것에 대하여

- 사람에 대한 이기적인 이야기_ 130719

ahgnodmik_ akdh 2013. 7. 1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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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률의 부족함을 느끼는 한 사람이 있다. [ 이하 능부사 ]



' 난 정말 시간이 부족한거 같아. 내 생각에 조금만 하면 돼는데 왜 끝나지 않는 걸까? '


'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필요한가 싶다가도  정작 사람과의 이야기를 나눌 땐, 이 사람 참 답답하네 라며 생각해 버리기 일쑤 인거 같아. '


' 대인 관계의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관망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너무 깊고 풍부한 선입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하해 '


' 일을 함에 있어서 효율적이라는 건 무엇일까? 맞는 사람들 끼리 맞도록 일을 만들어 가는건 어려운 일일뿐일까? 이건 너무 이상적인건가?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내 우물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



- 누군가가 맞고 누군가가 틀린 경우는 없다. 사실 생각해보면 옳다 그르다의 객관적 형식에 의한 판단 기준이 눈에 보일 뿐이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야 수두룩하고 넘쳐 흐르지 않는가. 다만, 그 기준을 누가 판단하고 이야기하느냐가 문제 인거 같다. 그 객관적인 판단에는 주관을 통과해 얻어진 편견과 선입관이 존재 하게 되니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개관적 요소는 우정이다. 이 분류는 그 안에 신뢰, 믿음, 신용, 공감, 등의 감정들이 두루 섞이며 조화롭게 맞춰진 직간접적 이해관계로둘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전제조건 하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은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능해진다. 더군다나 얼굴을 처음보았을때 느껴지는 분위기와 말 몇마디 섞었을때 생각드는 상대에 대한 입장과 그로인해 발생하는 예상대답 즉, 편견이다. 


능률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에 있어서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느끼는 시간조차 아까워 할 것이 분명히 보인다. 그는 '이시간에 내가 가진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답을 원하는데, 이사람은 자꾸 다른 이야기만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하며 선입관을 지니게 된다. 참으로 자기자신에 대한 인색함이 묻어나는 생각이지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세상사람모두가 능부사의 입장이라면 이 관계에서 더 이상의 신용과 공감 즉, 우정의 관계는 수립되기가 너무 어렵다. 능부사 또한 그러한 관계들을 생각해 왔다. 그리고 자기방어의 일종으로 이성적으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입장을 보여줄 수 있는 인격을 만들었다. 철저히 계산되어진 관계의 경험들 속에서 그는 깨달을 것이다. 


' 이런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


- 세상사람 모두가 능부사는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어떤 무엇인가를 추구하기도, 꿈을 이야기 하기도, 자기자신을 잃어 가기도 한다. 이미 성공ㅡ이라는 객관적인 표현을 빌어본다ㅡ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건 진심에서 비롯된 무엇인가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저것 또한 치밀하게 계산되고 설계되어진 한 인간의 이미지이다 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천재 또한 화장실을 가고, 홈리스들 또한 씻고 먹는다. 이세상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자신이 전혀 준비되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세상탓을 하는 인격과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인격의 충돌에서 파생되는 또 한가지의 인격 바로 '실망스런 나의 모습' 이 아닐까.


- 능부사에게 있어서 진심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굉장히 불편해 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규칙적으로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그 자신이 눈치채기도 전에 질병이 생긴다. 질병이라고 부르기 보다 회의감, 자책감을 가지게 된다. 진심으로 느껴지는 불편함을 이기거나 넘겨 짚기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인격으로써는 역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금 자기방어가 생긴다. 바로 현실 회피. ' 그 사람에게서 도망가는 것이 맞다 ' 라고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그 뒤로, 다시 계산되어 맞춰진 인격으로 그 사람을 상대하기 시작한다.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 / ' 아 그거 어떤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하던데, 난 잘 모르겠다. ' / ' 아 이미 생각했던건데, 그건 아닌거 같아 ' / ' 흠 좀 더 생각해 봐야 하는거 아닐까? ' 

' 아니, 그게 아니라, ' / ' 그런것 보다도, ' / ' 그렇지만 그건 어떻다고 생각하는데 ' / 


결국은 결론나지않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진심을 향해 발버둥치는 능부사의 인격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다. 정보와 경험, 기억의 조합으로 탄생한 인격을 상대하는 진심은 상처받고 흠집나기 시작한다. 내 진심이 진심이 아닌걸까 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계산에 맞춰진 대화와 기억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쉽게 말해 상대의 자기합리화에 휘말려 진심또한 자기합리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인격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 난 진심이 아니었어, 왜 그렇게 삐딱하게 구는거야? '


-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은 굉장히 이기적이다. 자신의 치부와 약점을 드러내고자 했을경우의 불안함을 이길 수 있는 능부사, 진심, 사람들은 잘 없다. 아니 있긴 있지. 그에대해서 경험치를 쌓았거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어떤식으로든 자기흡수를 통해 장점만을 가져가는 천재적인 사람과도 같은 부류의 사람은 자기합리화의 영향을 하나의 현상으로 보기 시작한다. 대화가 지속되어질 수 있는, 또는 그 요소들을 추출해 내는 획기적인 능력. 


- 한마디로 정리해 주지, 결국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 관계를 맺고, 상대를 인정하고, 그대로 살아가는것이 어렵다는 소리다.